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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고려인 이슬람 교도 원나라에 있었다.
 정옥  | 2004·04·11 03:40 | HIT : 757 | VOTE : 67 |
'고려인 이슬람 신도' 원나라 때 있었다  
광저우 유적서 고려인 무슬림 ‘라마단’ 묘비 발견

[조선일보]

순천향대 박현규(46·중어중문학) 교수는 지난해 말 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 있는 중국 원나라 유적에서 이슬람교도였던 고려인의 묘비를 발견했다고 지난 3월 29일 밝혔다. ‘라마단’이라는 이름의 묘비 주인공은 원 왕조 지방관인 다루가치를 지내다 광저우에서 숨을 거둔 고려 명문가 출신인 것으로 추정된다. 박 교수는 “이 비문이 당시 고려인이 이슬람교도가 될 정도로 이슬람 문화 유입이 왕성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 편집자 주

오늘날 전세계는 하나로 묶여가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시대 조류 속에서 이슬람 얘기를 듣기란 더 이상 낯선 일만은 아니다. 특히 최근 중동 이슬람 국가에서 발생하는 범국제적인 문제가 자주 언론 매체에 오르내리면서 전세계 사람들의 이슬람에 대한 관심 역시 한층 더 커지고 있다. 동아시아에 소재한 한국은 일찍부터 서아시아에 소재한 이슬람 문물과 접촉을 해왔는데, 고대 한국인들 가운데 이슬람 지역을 답사하거나 무슬림과 만났던 이도 있었다.

고대 이슬람인은 일찍이 뛰어난 항해 기술과 천문 지리학 지식을 갖추고 바다를 건너 세계 각국으로 나갔다. 이들은 동남아 국가나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신라라는 국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물론 이들의 기록이 전반적으로 막연한 점이 없지 않지만, 신라를 이상향의 국가로 보고 있는 대목도 있어 상당히 흥미롭다. 신라에는 금과 보석류가 풍부하고 좋은 자연 환경과 생활 여건을 갖추고 있는 데다가 백성들이 온화한 성품으로 외래인들을 포용하고 있어 이슬람교도 무슬림들이 이곳에 당도하면 영구 정착하여 떠날 생각을 안한다고 했다.

신라인들도 일찍부터 바다를 통해 멀리 해외로 나갔다. 신라시대 혜초는 중국 광저우로 가서 뱃길을 통해 천축국(인도)에 도착했으며, 또 천축국에서 서쪽으로 나가 이슬람 변경지역까지 왕래한 바 있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신라 고분에서 발굴한 이슬람 지역에서 생산되는 보석류나 유리제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이밖에 신라 사신은 이슬람 사신들과 당나라 장안(長安)을 거점으로 삼아 접촉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들어 아라비아 상인들이 한반도로 진출하여 왕께 토산물을 바친 적이 있다. 고려 조정에서도 이들을 우호적으로 받아들이고 따뜻하게 환대해 주었다. 몽골(나중에 원으로 바꿈)이 아시아와 유럽 대륙에 걸쳐 사상 초유의 대제국을 건설한 시기에 고려와 이슬람의 본격적인 교류가 이루어졌다. 원나라 사신과 다루가치 속에는 적지 않은 무슬림이 포함되어 있었고, 원나라와 고려 왕실의 혼인 정책으로 인하여 원나라 공주가 한반도로 오면서 많은 무슬림을 대동했다.

도시계획 확장공사 중 발견돼

이번에 발견한 고려인 라마단(剌馬丹) 묘비는 고대 한국과 이슬람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증거물이다. 라마단은 원나라 시대에 중국에서 벼슬을 하다가 광저우에서 죽자 이슬람교도 묘역에 묻혔다.

그의 묘비석은 1985년 7월 광저우 구이화강(桂花崗) 칭전셴셴구무(淸眞先賢古墓) 부근에서 도시계획 확장공사 중에 출토되었다.

필자는 지난해 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으로 중국 소재 한국 관련 금석문을 조사한 바 있다. 12월 중순 광저우 지역으로 내려가 광저우박물관 전하이러우(鎭海樓) 2층에 전시된 복제품 라마단 묘비를 열람했다. 2층에는 해상 실크로드라는 주제와 관련된 유물이 가득차 있었다. 광저우 지역은 당나라 때에 해상 실크로드가 개척된 이후 해상교역의 중요한 무역항 중의 하나였다. 고려인 라마단 묘지명은 해상 실크로드를 증명해주는 중요한 자료였다. 여기에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곳에 전시된 라마단 묘지명이 복제품이라는 점이다. 복제품 라마단 묘비는 일찍이 인하대 민속학자 최인학 명예교수에 의해 국내 언론에 간략하게나마 소개된 적이 있다.

필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곧바로 라마단 묘비의 복제품이 아닌 원 묘비를 찾아나섰다. 광저우박물관 리수이메이(李穗梅) 부관장의 말에 따라 라마단 묘비가 출토됐던 칭전셴셴구무를 방문했다. 칭전셴셴구무는 이슬람교도의 옛 묘역이다. 이곳에 들어가 관계자에게 라마단 묘비석의 존재를 물었으나 ‘잘 모르겠으니 직접 찾아보라’는 말을 들었다. 이에 필자는 한나절 동안 열대림으로 덮여 있는 넓은 묘역을 일일이 돌아다니는 수고를 하였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이곳에서 더 이상 소득이 없자 발길을 광저우 이슬람교 협회가 있는 화이성사(懷聖寺)로 돌렸다. 화이성사는 당나라 때에 세워졌으며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사원 중 하나이다. 뜻밖에 이곳 관계자로부터 고려인 묘비석이 화이성사 교육관 3층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창고 한 구석 나무 더미 위에 놓여 있는 한 비석을 찾을 수 있었다. 비석 위에 가득 덮여 있는 먼지를 대강 떨고 보니 바로 칭전셴셴구무에서 찾아다니다가 포기했던 라마단 묘비석이었다.

이미 햇살이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는 시각이라 창고 속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희미한 백열등 외에 별다른 조명시설이 없어 먼저 라마단 원 묘비석을 사진으로 담고, 준비해간 줄자로 비석 크기를 쟀다. 그 다음에 비문 대조 작업에 나섰다. 비문 대조 결과 사진판 묘비석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글자들을 일부 판독할 수 있었다.

비문 속의 주인공인 라마단(剌馬丹)은 누구인가? 비문에 적힌 내용을 종합해보면, 그는 1312년(고려 충선왕 4)에 태어났고, 부친은 알라웃딘이다. 다두(大都·현재 베이징) 완핑(宛平)현, 즉 오늘날 베이징(北京) 남쪽에 거주했고 저택명은 칭쉬안관(靑玄關)이다. 1349년에 루촨(陸川)현 다루가치에 임명되었으나 그해 3월 23일 광저우에서 죽었고, 8월 18일 광저우 이슬람교 묘역에 묻혔다. 현존하는 각종 문헌에 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아 더 이상의 구체적인 생애는 추적할 수 없다.

원나라서 ‘배경’ 지닌 고려 명문가

라마단은 이슬람교 신도였다. 그의 이름만 보아도 그가 이슬람교도임을 알 수 있다. 剌馬丹(라마단)은 한글음으로 ‘날마단(ralmadan)’, 중국어음으로 ‘라마단(ramadan)’이며, 이슬람교의 종교 의식인 ‘라마단(Ramadan)’과 의미가 일맥상통한다. 무슬림은 매년 이슬람력 9월 라마단 기간이 되면 일출에서 일몰까지 금식을 한다. 이 기간에는 금식 시간에 코란 경전을 읽으며 자신의 믿음과 본능적인 욕구의 싸움을 통해 이슬람교의 거룩한 정신을 깨닫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 고려와 원나라는 국가적 특수 관계를 맺고 있어서 인적 교류가 매우 활발했다. 고려 국왕과 태자들은 원나라 수도 다두에 장기간 체류하였고, 고려 출신 여자가 원나라 황실이나 귀족들과 혼인하거나 기황후(奇皇后)처럼 원 순제(順帝)의 제2황후가 되기도 했다. 고려 국왕과 태자 그리고 원나라 황실과 혼인하는 여식들을 수행하기 위해 수많은 고려 인사들이 중국 대륙으로 건너갔고, 이 중에는 원나라로부터 관직을 받은 인물도 있었다. 비문 주인공 라마단과 그의 부친 알라웃딘이 언제 원나라로 들어가서 무슨 벼슬을 했느냐 하는 사실은 자료 부족으로 알 수 없으나, 다만 그가 지방 통치관인 다루가치로 임명된 점으로 보아 원나라에서 상당한 배경을 가진 고려 명문가 출신이었음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고대 한국인의 활동상 보여줘

그렇다면 라마단이 어떻게 이슬람교를 믿었을까? 이는 매우 궁금한 사안이지만 이 또한 자료 부족으로 알 길이 없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중국 대륙에 진출한 고려인들은 원나라에서 이슬람교도들과 매우 자연스럽게 접촉했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당시 고려에도 중국에서 들어온 많은 무슬림들이 있었다. 한반도나 재중 고려인들은 무슬림들을 통해 이슬람교를 알게 되었고, 또 이 중에는 이슬람교의 참된 진리를 깨닫고 종교로 신봉하는 이가 생겼을 것이다. 라마단도 아마도 이런 경로로 이슬람교를 믿은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 글을 적으면서 고대 한국 문화의 다양성을 생각했다. 고대 한국은 해외의 많은 국가와 접촉하면서 다양한 대외 관계를 맺고 있었다. 오늘날 전세계가 하나로 묶여지는 현실 속에서 우리 민족이 교류해 왔던 대외 관계사를 연구하는 작업은 많은 손길을 요구하고 있다. 해외 국가 또는 타 문화권과의 인적 교류와 물적 교역은 단순히 자국민들의 상대방 국가나 문화권에 대한 이해 증진에만 그치지 않고, 이것을 자국 문화에 흡수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고려인 출신 이슬람교도 라마단 묘비는 고대 한국과 이슬람의 교류 사실을 증명해줄 수 있는 좋은 실물이자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게다가 현재 이슬람 국가들이 우리나라와 좋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어서 이슬람 문화 역시 우리 모두의 곁으로 한걸음 더 바짝 다가오고 있다.

박현규 순천향대 교수

⊙ 라마단 묘비석은?

“알라는 위대하다” 아랍어로 코란 새겨 있어

라마단 묘비석의 높이는 62.0㎝이고, 폭은 42.0㎝이며, 두께는 6.2㎝이다. 비석 앞면은 매끈한 편이고, 뒷면은 다소 거칠다. 묘비석은 정면에는 이슬람 경전 코란 제2장 255절을 인용한 아랍어가 크게 새겨져 있고, 좌·우측에는 한자가 조그마하게 새겨져 있다. 비석에 새겨진 글씨의 상태를 보면 정면과 우측면은 깨끗한 편으로 글자 판독에는 별 문제가 없으나 좌측 부분은 이미 심하게 마모되어 글자 판독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마모돼 보이지 않는 몇 글자를 빼고 난 나머지 묘비 정면에 새겨져 있는 아랍어 부분을 번역하면,

모든 사람은 죽는다.
알라 외에는 신이 없나니, 그 분은 살아계시사 영원하시며 모든 것을 주관하시도다. 졸음도 잠도 그 분을 엄습하지 못하도다. 천지의 모든 것이 그 분의 것이니, 그 분의 허락 없이 어느 누가 알라 앞에서 중재할 수 있으랴. 그 분은 그들의 안중과 뒤에 있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그들은 그 분에 대하여 그 분이 허락한 것 외에는 그 분의 지식을 아무것도 모르니라. 권좌가 천지 위에 펼쳐져 있어 그것을 보호하는 데 피곤하지 아니하시니, 그 분은 가장 위에 계시며 장엄하시노라. 알라의 사자가 일찍이 말하기를 “타향에서 죽은 자는 이미 순교자가 되었다.”

이 묘는 알라웃딘의 자식 라마단이 죽어 귀속한 곳이다. 알라께서 그를 용서해주고 자비를 구하여 (판독 불능). 할렙(오늘날 시리아 지역)을 여행한 아르사(판독 불능)가 알라의 축복 받은 751년 7월 ○일에 쓰다.

라마단 묘비문을 적은 아르사 역시 이슬람 교도다. 그가 중국 광저우에서 1만수천여㎞ 떨어진 할렙(시리아) 지역을 여행한 것은 이슬람 성지 순례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좌·우측에 새겨져 있는 한자 부분을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다두루(大都路) 완핑(宛平)현 칭쉬안관(靑玄關) 주인 라마단은 고려사람이다. 나이는 38세이고 지금 광시다오(廣潟) 룽저우(容州) 루촨(陸川)현 다루가치에 임명되었다. 지정 9년(1349) 3월 23일에 죽었다. 8월 18일에 광저우 성북 류화교(流花橋) 구이화강(桂花崗)에 묻고 비석을 세웠다.

‘이 기사는 <주간조선>의 허락을 얻어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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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디어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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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잡담방에 올린 영화, 혹은 드라마 비천무에 관한 제 의견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원나라를 등에 업은 친원파 고려인이기 때문에 한족을 도와 멸문지화를 당할 이유가 더더욱 없다는 것이죠.

하나 더, 기사에서 잘못된 것 같은 게, 고대 한국인이 아닌, 중세 한국인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 우리는 고려 시대를 한국 중세사회라 배우고, 국어 시간에 국어의 변천사를 공부할 때에는 고려어는 중세어라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대 삼국이 무역 등으로 이들 아랍인과 교역을 했었다 하더라도, 고려때만큼 활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코리아라고 불리는 것은 이 고려 시대 때, 알려진 이름이었으니까요.

혹시 제 글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지적 바라겠습니다.

덧말: 저는 역사도 좋아합니다. 특히 고대로 갈 수록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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