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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부부의 결심 - 해조와 무타의 뒷이야기 <후편>
 ▷◁돌베개    | 2016·12·04 20:13 | HIT : 207 | VOTE : 13 |
                                    (위 글인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그리고 오라버니는 당신한테 서신과 답신을 준 다음에 떠나셨고?”

무타는 말했다.

“그래. 내가 당장 떠나 달라고 부탁했거든.”

해조는 재빨리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쉰 뒤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라버니를 이대로 보내드리면 안 돼. 당장 오라버니 일행에게 전령을 보내자. 그 전령이 오라버니를 이 고을로 모시고 오도록 해야 해.”

무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순베에게 내 말을 빌려주고, 당장 아벌한 일행의 뒤를 쫓으라고 명령할게. 난 아벌한한테 말씀드릴 것이 있으니까 이러는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한 뒤, 문을 열고 집 앞으로 나가서 큰 소리로 외쳤다.

“순베야, 순베야! 일어났느냐? 일어났으면 이리 오너라!”

그가 외칠 때, 아침 햇살은 막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물려는 수레에서 나와 기지개를 켠 뒤 아침 해를 바라보았다. 한낮이 아니라 이른 아침에 보는 해는 둥글었고 선홍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는 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뒤, 뒤를 돌아 일행을 살펴보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무타를 만난 것이 과연 바른 선택이었는지, 그리고 무타에게 서신과 답신이 든 자루를 넘긴 것이 옳은 일이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괜한 짓을 한 게 아닐까? 난 내 부끄러운 부분을 그놈한테 드러냈는데, 이 일로 비웃음을 사면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에벤키 고을로 돌아가서 서신과 답신을 돌려달라고 해야 하나?’

그는 “이러지 말고, 물이라도 마시고 나서 가던 길을 마저 가자.”고 혼잣말을 한 뒤 혼동강으로 흐르는 시내에서 조롱박으로 만든 바가지로 물을 떠 마셨고, 그 다음 호위 무사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언제쯤이면 부루 목장(아벌한 물려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 만약 시일이 걸린다면, 여기서 미리 물통에 물을 채워라.”

시내가 그리 깊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시종과 시비들을 모두 수레에 태운 뒤 마부에게 말을 몰아 시내를 건너라고 명령하려고 했다. 전사들은 그냥 걸어서 건너가든가 말을 타고 건너가면 될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는 시내 건너편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사람과 말이 그 불로 몸을 말려야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는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다 부질없었다. 자신은 셋째 누이(해조)와 만나지 못했고, 그녀에게 어떤 말도 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은 누이의 남편, 에벤키 족장(무타)에게 가로막혔고, 그가 풍기는 차가운 기운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으며, 그가 하는 말에 큰 소리로 반박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애초에 그는 에벤키 족 고을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이런 감정이 눈사태처럼 밀려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로 그 때, 물려는 뒤에서 전사들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구냐? 어떤 놈이야?”

“아벌한, 누군가가 말을 타고 우리 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활을 쏠까요?”

“빨리 명령을 내려 주시옵소서, 급합니다!”

물려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말을 타고 다가오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의 귀를 때렸다.

“쏘지 마세요, 쏘지 마세요! 접니다, 에벤키 족장님의 시종인 순베예요!”

물려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전사들에게 말했다.

“쏘지 마라. 저놈은 내가 아는 놈이니라.”

전사들은 “뭐야? 깜짝 놀랐네!”하고 혼잣말을 하며 창과 칼을 거두고, 화살을 잰 활을 아래로 내렸다. 그들은 눈을 가늘게 뜨고 순베를 바라보면서 툴툴거렸다.

“안 그래도 여기까지 오느라 춥고, 졸리고, 힘들었는데, 어디서 에벤키 놈이 툭 튀어나와서 사람 놀라게 만들어?”

“난 도적이라도 온 줄 알고 활을 겨눴다! 가슴이 철렁했어! 아니라니 다행이지만 ….”

“하긴 여러 명이 함께 다니는데, 그걸 혼자서 덮치는 도적이 어디 있겠어? 덤비려면 떼로 덤볐겠지!”

순베는 말을 멈춘 뒤, 말에서 내려 그를 흘겨보는 전사들을 무시하고 성큼성큼 물려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내뿜는 하얀 입김이 구름이나 솜뭉치처럼 둥글게 뭉쳤다가 순베의 뒤로 밀려나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는 물려의 여섯 걸음 앞까지 걸어왔고, 걸음을 멈춘 뒤 허리를 직각으로 꺾고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 쥐었다. 그는 그 자세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물려는 눈썹과 눈썹 사이를 모으고 뚱한 얼굴로 순베를 바라보다가, 그의 숨소리가 잦아들자 입을 열었다.

“순베야, 왜 우리를 따라왔느냐?”

순베는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쥔 채 고개만 위로 들어서 물려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우리 족장님이 저를 보내셨습니다.”

“그래? 왜? 내 볼일은 다 끝났는데, 왜 그놈이 너를 나한테 보냈지?”

순베는 윗몸을 일으키고 오른손을 들어 왼쪽 가슴에 갖다댄 뒤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그는 자세를 바꾼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벌한, 우리 족장님은 제게 아벌한 일행을 꼭 에벤키 고을로 모셔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분과 해조 부인이 아벌한에게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덧붙이셨어요. 그래서 제가 전령으로 온 겁니다.”

“그 애들이 나한테 할 말이 있다면, 나중에 내 성으로 서찰을 보내거나 사자를 보내면 되지 않느냐? 꼭 내가 고을로 가야 하느냐?”

“이 일은 서찰을 보내거나 사자를 보내서 될 일이 아니고, 꼭 아벌한 앞에서 직접 말씀드려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려는 순베를 째려보며 가볍게 한숨쉬었다. 그는 일이 자신이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지금쯤이면 자신이 준 서신과 답신이 무타 집의 구덩이에서 불타고 있으리라고 생각했고, 해조라면 모를까, 무타는 자신을 철저하게 외면하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예상이 - 못해도 절반은 - 빗나간 것이다.

세상에, 다른 건 몰라도 아벌한 물려라면 이를 득득 가는 “에벤키 햇내기”가 물려를 자기 고을로 모시려고 한다니! 이건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가 우뚝 서서 순베를 바라보고, 물려 일행이 두 사람 뒤에 부채꼴로 모여 두 사람을 바라보는 동안에, 어느덧 해는 하얗게 빛나는 공으로 바뀌었고 햇살은 그들을 고루 비추었다.

순간, 물려는 어쩌면 무타가 자신과 고도쇠가 전해준 서신들을 읽고 화가 났고, 그래서 그것들을 전해준 자신에게 따지기 위해 순베를 보낸 게 아니냐는 의문을 품었다.

자신은 아무르 절우부의 한이고, 성주나 장군이나 편장이나 촌장이나 장사꾼이나 학사 - 이들 모두가 물려에게 해조와 무타의 혼인을 반대하는 서신을 보냈다 -를 다스리는 사람이며, 따라서 그들이 거친 말을 하거나 ‘선’을 넘지 못하게 막을 의무가 있었다.

비록 자신이 그들에게 하나하나 반박하는 답신을 보내기는 했지만, 그들이 서신을 쓰는 일 자체는 막지 못했고, 무타는 그 서신들을 읽으면서 분노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타가 자기 고을을 뛰쳐나와 활과 삼엽 화살을들고 서신을 쓴 사람들을 찾아갈 리는 없을 테고, 그 대신 가장 손쉽고 가장 확실하게 화풀이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바로 그 모든 사람들의 윗사람인 자신에게 따지는 것이다. 어쩌면 이번에는 말다툼이나 외면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물려는 순베에게 “난 가지 않겠다. 네 주인에게 가서 그렇게 전해라!”하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곧 정신을 차렸다. 그가 사람들의 서신만 보낸 게 아니라, 자신의 답신도 함께 보냈다는 사실이 기억났던 것이다. 만약 무타가 서신 때문에 화를 낸다면, 물려는 그에게 답신은 읽어보고 나서 화를 내느냐고 물을 수 있었다. 무타는 읽었다고 대답할 수도 있고, 읽지 않았다고 대답할 수도 있다. 만약 무타가 답신을 읽지 않았다면, 물려는 답신의 내용을 알려줌으로써 자신은 서신을 쓴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을 밝히면 된다. 잘하면 몸에 화살이나 도끼를 맞지 않고 설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물려는 순베가 전한 말을 받아들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잠깐 눈을 감고 “흠.” 하는 소리를 낸 뒤, 눈을 뜨고 고개를 위로 비스듬히 들면서 수하(手下.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얘들아, 에벤키 족 고을로 갈 준비를 해라. 말 머리를 그쪽으로 돌린다!”

물려의 수하들은 툴툴거리면서 다 타서 숯이 된 장작들을 주워 모으고, 가죽 부대에 물을 채우고, 수레에 올라 그 위에 있는 천막으로 들어가고, 창과 활을 든 채 몸을 반대쪽으로 돌리고, 말에 올라타고, 수레에 앉아 말 고삐를 쥐었다.

물려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본 뒤, 일행이 방향을 돌리자, 행렬의 한가운데에 있는 수레에 올라간 뒤, 수레 위의 천막으로 들어가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자, 어서 가자꾸나! 순베야, 네가 맨 앞에서 우리를 안내해라!”

순베는 꽉 쥔 오른 주먹을 왼쪽 가슴으로 갖다 댄 뒤, 물려 쪽으로 허리를 숙이고,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 아벌한!”

순베는 말 위에 올라탄 뒤 고삐를 쥐었고, 말들은 발을 구르기 시작했으며, 수레는 덜컹이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순베가 이끄는 물려 일행은 해가 서쪽 하늘로 떨어지지 일보직전에 에벤키 족 고을에 다다랐다. 사람과 말은 모두 반쯤 감긴 눈과, 쌕쌕거리는 거친 숨소리와,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자신들이 지칠 대로 지쳤다는 것을 드러냈다.

물려는 천막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수레가 덜컹거리는 것을 느끼다가, 갑자기 수레가 멈추고 말발굽 소리와 발소리가 멈춘 것을 알아챘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귀에 들이닥친 것은 순베의 목소리였다.

“아벌한, 다 왔습니다! 족장님과 부인이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물려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 와서 물러설 순 없어.’하고 되뇌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천막의 휘장을 오른손으로 걷었다.

해조와 무타는 물려의 여섯 걸음 앞에 서 있었다. 물려는 왼손으로 왼 허리에 찬 철검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꾹 다문 채 서 있었다. 그의 양 옆에는 창병과 궁수(활을 쏘는 군사)가 각각 세 걸음씩 떨어진 곳에서 무타를 노려보면서 서 있었다.

물려는 눈을 좁히고 무타를 훑어보다가, 그의 손에 활과 삼엽화살과 도끼가 없고 그의 왼 허리에 긴 칼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비록 눈에는 핏발이 섰지만 그의 눈매가 노려보는 눈매가 아니고, 그가 이맛살을 찌푸리지 않았으며, 눈 밑이 거무죽죽하지 않고, 표정은 아주 담담하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물려는 잠시 생각하다가 오른손을 들어 위에서 아래로 젖힌 뒤, 절우부 전사들에게 “물러나거라!”하고 명령했다. 창병과 궁수는 쓴 입맛을 다시면서 여섯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났다. 그들은 물러난 뒤에도 물려와 무타를 번갈아가며 보았고, 그들의 거친 숨소리는 찬 공기 속으로 퍼지면서 무타를 위협했다.

물려는 무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가 입을 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꼭 이 고을로 와서 네 말을 들어야 한다고?”

무타는 웃지도 찡그리지도 않으면서 짤막하게 대답했다.

“네.”

“난 바쁜 사람이야. 내 성과 목장에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 나를 도중에 불러 세우고 여기까지 오게 했으니, 허튼소리를 하려고 부른 거라면 가만 안 둔다!”

물려는 짜증이 나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무타는 그를 반쯤 감은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한테 주신 서신과 답신을 다 읽었어요.”

“할 말이 그거냐?”

“네.”

“겨우 그런 말을 하려고 날 불렀어?”

무타는 말했다.

“아벌한이 저한테 서신과 답신을 줄 때, 다 읽고 나서 그것들을 땔감으로 쓰거나, 빨아서 걸레로 쓰라고 하셨죠?”

물려는 대답했다. 그는 속으로 이런 질문에는 답이 정해져 있어서 참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랬지. 그래서?”

바로 그 때 무타는 얼굴에서 힘을 뺐다. 그는 씩 웃은 뒤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물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았고, 적당히 부드러워 가죽 위에 떨어지는 기름방울 같았다.

“아벌한의 당부(當付. 말로 단단히 부탁함)를 어겨야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전 아벌한을 처음 뵈었을 때부터 아벌한의 말씀을 안 들었잖아요? 지금 와서 제 태도를 바꾸고 싶지는 않아요. 아벌한이 주신 서신과 답신들은 한 통도 버리지 않을 겁니다. 우리 부족 사람들한테 다 읽어줄 거예요. 그리고 그것들을 우리 고을의 서고(書庫. 책을 보관해 두는 건물이나 방)에 고이 간직하고, 서기(書記)가 관리하게 할 겁니다. 땔감이요? 걸레요? 옷감이요? 어림도 없죠. 전 절대로 그것들을 그렇게 써먹지 않을 거예요.”

물려는 입을 꾹 다문 채 눈을 크게 떴다. 잠시 후 그는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목에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뒤통수를 쇠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분 나쁜 기습이 아니라, 꽉 막힌 속을 뻥 뚫어주는 명약을 마시는 것과 같았다. 아니면 칼로 고름을 째는 것과 같거나. 무타는 물려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을 이었다.

“이건 아벌한 앞에서 직접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순베를 보낸 겁니다. 서신을 보내드리면 아벌한은 ‘바쁘다.’고 하면서 읽지도 않으실 거잖아요?”

물려는 입을 열어 겨우 한 마디를 할 뿐이었다.

“족장 … 너는 ….”

그 때 해조가 끼어들었다.

“이 사람(무타)이 한 말은 사실이에요. 그러니 의심하지 마세요. 게다가 ….”

그녀는 가볍게 입을 다물었다가 잠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엥흐멍 마님을 이 고을에 맡기고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첩실이라도 아내는 아내예요. 지아비(남편)로서 지어미(아내)를 도와주셔야죠. 마님은 오라버니가 곁에서 도와주시면 더 빨리 나으실 거예요. 물론 마님이 고향과 친정 식구들과 동무들을 그리워하셨겠지만, 그렇다고 지아비가 필요 없는 건 아니니까요.

저희 두 사람을 챙겨주실 정도로 속 깊은 오라버니가 정작 자기 첩실은 챙겨주지 못하신다면 그건 다른 사람의 집에 난 불을 끄면서, 자기 집에 난 불은 끄지 못하는 사람과 같아요.

그러니 엥흐멍 마님의 병이 나을 때까지는 이 고을에 머물러 주세요. 성과 부루 목장지의 일은 절우부의 부(副)수장한테 맡기시면 돼요. 아무리 일이 중요해도, 식구를 챙기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잖아요? 그리고 오랫동안 저와 만나지 못하셨으니, 이 고을에 머무르는 동안 저한테 묻고 싶었던 걸 다 물어보시고, 저한테 하고 싶었던 말씀을 다 하시고, 제가 오라버니한테 말씀드리는 걸 들어주세요.

저는 그걸 말씀드리고 싶어서 순베를 오라버니한테 보내드린 거예요.”

물려는 해조를 바라보며 한 마디만 할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해조야. 너 … 너는 ….”

무타는 물려가 더듬거릴 때, 말을 끊으려는 사람처럼 끼어들었다.

“일행 분들에게 어서 오두막으로 가라고 하세요. 손님들이 묵는 곳은 저쪽이에요. 물이랑 곡식은 가지고 오셨을 테니 따로 드리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가져오신 물과 곡식이 다 떨어지면 그 땐 우리 부족의 곳간에 있는 좁쌀이랑 사슴고기랑 말린 연어를 드릴게요.

아벌한은 엥흐멍 마님의 친정에서 묵으세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손님들이 묵는 오두막을 내어 드릴게요. 부루 목장지의 절우부 부수장한테는 제가 서신을 보내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할 테니까 - 그리고 시종과 시비와 전사들의 식구들한테도 따로 서신을 보낼 테니까 -, 혹시라도 절우부가 제대로 안 굴러가면 어떡하나, 하고 염려하지 마시고 그냥 이 고을에서 푹 쉬세요.”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뒤 윗몸을 뒤로 돌리고 오른팔을 쭉 뻗어 오른손의 검지로 고을 안을 가리켰다. 물려는 무타를 보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곧 입을 다물었고, 고개를 앞으로 떨궜다. 그의 뺨을 스치는 바람은 그다지 차갑지 않았고, 그 바람은 모든 것을 할퀴는 짐승의 발톱이 아니라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사람의 손 같았다. 그의 옆에 있는, 가지가 앙상한 나무에서는 가지에 달라붙은 얼음이 녹아 물방울이 되어 땅으로 떨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들고 눈가에 맺힌 ‘이슬’을 보이며 일부러 큰 소리로 외쳤다.

“오냐, 알았다! 하지만 이 고을 살림이 축나는 건 각오해야 할 것이야! 우리 일행은 너무 배가 고파서 밥이건, 연어구이건, 버섯이건 가릴 것 없이 먹어치울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너랑 해조에게 묻고 싶은 게 많으니까, 밤을 새며 이야기를 나누느라 잠을 못 자도 내 탓은 하지 마라!”

무타는 눈을 감은 뒤 부드럽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해조는 부드러운 눈매로 물려를 바라보면서 오른주먹을 왼손으로 감싸 쥔 뒤 허리를 살짝 숙였다.

물려는 그 두 사람을 보다가, 뒤로 돌아서며 그의 일행에게 말했다.

“얘들아, 어서 짐을 풀어라! 우린 당분간 이 고을에서 묵는다! 에벤키 족장이 너희의 식구들한테 서신을 보내 너희가 잘 있다는 것을 알려줄 테니 걱정 말고 푹 쉬어라!”

일행은 얼굴에서 힘을 빼고 기쁜 마음으로 한숨을 쉬면서 짐을 풀기 시작했다.

해조와 무타는 물려와 그의 일행을 바라보다가, 뒤로 돌아서 고을 안쪽으로 걷기 시작했고, 물려는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물려는 걸으면서 무타에게 말했다.

“내가 에벤키 족의 땅을 떠날 때에는 마을이 세 곳 뿐이었는데, 어제 이곳에 와서 보니까 고을이 한 곳이고 마을은 다섯 곳이더구나. 게다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에벤키 족만 있는 게 아니라 아무르와 카르마키의 혼혈인도 있고, 순혈 아무르 인도 있고, 카르마키인 포로도 있는데, 그들이 다 자기 땅을 받고 자기 일을 하면서 살고 있어서 온 고을과 모든 마을이 활기가 넘쳐.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너 … 아니 자네는 아주 훌륭한 족장일세. 자네가 내 매부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워.”

무타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면서 계속 걸어갔다. 그는 입을 열어 물려에게 말했다.

“저 혼자 이런 고을을 만든 게 아닙니다. 제가 다스리는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고, 우리 부족의 장로들이 백성들을 돌보면서 저를 도와주었기 때문이고, 제 아내가 저와 백성들과 장로들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마을을 고을로 키울 수 있었어요. 그러니 칭찬은 저한테 하지 말고 그들에게 하세요.”

“자네, 정말 달라졌군. 더 이상은 내가 알던 ‘햇내기(신출[新出]내기를 일컫는 순우리말)’가 아니야.”

“백성과 공족(公族. 공[公]의 겨레붙이. ‘왕족’이나 ‘왕공[王公]의 동족’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을 이끌고 에벤키 땅으로 달아나셨던 아무르 절우부의 공자(公子)님이 더 이상은 공자님이 아니듯, 에벤키족 족장의 열 살짜리 서자는 더 이상은 어린 서자가 아니니까요.”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엥흐멍의 친정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었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을 깨끗하게 쓸어낸 고을 안의 길을 걸으면서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얽히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그 때, 무타와 함께 걷던 해조가 왼손을 내밀어 무타의 오른손을 꼭 잡았다. 무타는 망설이지 않고 해조의 왼손을 힘주어 쥐었고, 둘은 그 자세로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물려는 해조와 무타의 뒤에서 이 모든 것을 보았다. 그는 마음 한 구석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졌다.’

그는 뒤이어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서신과 답신으로 에벤키 족 족장 … 아니, 매부를 설득했다고 여겼는데, 기실은(실제로는) 내가 내 누이와 매부한테 설득당한 것이야. 내 첩실을 간병하고 곁에 있어주라고 말할 때 한 번, 그리고 내 누이가 매부를 사랑하고, 매부도 내 누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손으로 말할 때 한 번 설득 당했다고. 이제 더 이상은 이 사실에 토를 달수가 없구나.’

그는 쓴 입맛을 다시며 멈춰 선 뒤, 고개를 들고 왼쪽으로 돌려 이제 막 하늘에 떠오른 달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말했다.

‘하늘님이시여, 달님이시여, 별님이시여. 이것이 여러분의 뜻입니까? 이것이 제게 주어진 운명입니까? 그렇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운명이라는 철광석은 여러분이 주셨지만, 그것을 캐고, 모으고, 녹여서 쇠로 만든 건 저와 제 누이와 매부니까요.’

달과 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물려와 해조와 무타와 고을 안에 있는 집들의 지붕에 은은한 빛을 비출 뿐이었다.

그러나 물려의 ‘묵상’은 오래 이어질 수 없었다. 무타가 그의 앞에서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기 때문이었다.

“처남, 뭐 하세요? 엥흐멍 마님의 친정으로 가려면 계속 걸으셔야 해요! 저랑 아내가 그곳으로 이끌어드릴 테니까, 빨리 따라오세요!”

물려는 무타의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리고 발걸음을 떼면서 대답했다.

“알았네, 내가 따라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게!”

물려는 조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멀어져 갔고, 그의 뒤에는 키가 대여섯 살짜리 아이만한 작은 나무가 남았는데, 그 나무의 가지에 달라붙어 있던 눈이 녹아 물방울이 되어 막 땅으로 떨어지려 했고, 눈이 녹은 가지에서는 물을 머금은 겨울눈이 드러나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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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불의 검』에 나오는 산마로와 아라 커플에게 바치고 싶은 시(詩)  돌베개 18·08·06 67
208   『비천무』의 아리수 부인(夫人)께 드리는 서신(書信)  돌베개 18·03·31 227
207   <인월> 9화를 읽고  돌베개 18·03·25 170
206   <인월>의 시대배경을 보다가『비천무』의 조연들을 떠올리다  돌베개 17·10·28 243
205   <인월> 8화 훑어보기  돌베개 17·10·15 221
204   뒤늦은 감상문 -「인월」7화  돌베개 17·10·08 199
203   「인월」6화 줄이기  돌베개 17·10·05 156
202   「인월」5화를 아주 간단하게 줄인 글  돌베개 17·07·08 180
201   <인월> 4회를 읽고 쓴 짧은 글  돌베개 17·06·11 178
200   <인월> 3회를 읽고 감탄한 까닭  돌베개 17·04·24 192
199   『이슈』5월호에서「인월」을 보고 생각한 것들  돌베개 17·04·19 178
198   『이슈』4월호에서「인월」을 보고 생각한 것들  돌베개 17·04·19 184
197   ▷◁『이슈』에 실린「인월」연재분을 읽고 느낀 점  ▷◁돌베개 17·03·06 162
196   ▷◁[단편]부부의 결심 - 해조와 무타의 뒷이야기 <전편>  ▷◁돌베개 16·12·04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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